2013년 11월 4일

포커에서 배우는 게임 디자인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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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가필드 | 2011년 | 원문보기

[역자의 말: 오랜만에 새로운 번역글입니다! 블로그를 이전한 후 스카이림의 모듈화 레벨 디자인 글을 포함해 여러가지 새로운 번역글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블로그 이전이 좀 미뤄질 것 같고 계속 이대로 둘 수도 없으니 일단 새 글을 하나 올립니다. 매직 더 게더링의 디자이너 리처드 가필드가 말하는 포커의 게임 디자인 교훈입니다.]

역사적으로 게임은 디자인된 것보다는 진화한 것이 많았다. 역사 속 게임 중 디자이너가 존재하는 게임은 많지 않으며, 존재한다 해도 보통 그 “디자이너”는 기존 게임에 작은 변화를 가한 정도를 기여했다. 이런 전통적 게임은 그 게임을 당시 시대와 문화 속에서 통용되게 만든 특성, 혹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게임이라면 시간과 문화를 넘어 인기를 얻는 요인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내가 많은 것을 배운 포커는 제법 흥미로운 사례다.

포커에는 운과 기술이 있다

포커의 특징 중 하나는 운의 함량이다. 누구든 포커 한 판은 이길 수 있다. 그런데 포커에는 기술 역시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기술과 운이 대립한다는 세간의 게임 디자인 통념을 배반한다. 기술과 운은 대립 관계가 아닌 두 개의 축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게임 디자이너는 자기 게임에 들어갈 운수의 양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나는 전반적으로 게임 디자이너들이 게임에서 운을 줄이려는 성향이 있다고 본다. 아마 디자이너들 본인이 뛰어난 게임 플레이어인 경우가 많고 운이 적은 게임에서 자기 실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을 조금 더 담은 게임에서 주목해야 할 점 중 하나는 폭넓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에서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컴퓨터 게임에서는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주로 지금 당장 거실에 함께 있는 사람과 하게 될 아날로그 게임에서는 이 점이 중요하다. 이 사람들이 체스 토너먼트나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앉아서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포커처럼 조금 더 운이 있어서 언제든 만회할 수 있는 게임을 할 가능성이 높다.

포커는 빠르다

운이 많은 게임의 탁월한 특성이 바로 짧은 플레이 시간이다. 동전 던지기 한 번으로 승패가 결정될 게임에 수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포커는 한 판이 몇 분 정도 걸린다. 때문에 높은 수준의 실력을 (확률적으로) 상당히 짧은 시간에 보여줄 수 있다.

포커처럼 길이가 짧은 게임의 또 다른 특징은 어떤 일정에도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포커는 몇 분을 할 수도 있고, 몇 시간을 할 수도 있다. 토너먼트에서 여러 판이 이어질 수도 있고, 사람이 들어왔다 나갈 수도 있고, 어도비에 있는 내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수년에 걸친 게임을 기록하면서 이어갈 수도 있다.

포커에는 단순하고 유연한 뼈대가 있다

포커는 배우기 쉽다. 게다가 포커를 배우면 그저 하나 이상의 게임을 배우게 된다. 포커를 배우면 일군의 게임에 활용되는 운영체제를 배우게 된다. 패의 등급과 일반적인 플레이 패턴만 알고 있다면 파이브 카드 드로우에서 세븐 카드 스터드, 텍사스 홀덤, 오마하, 아나콘다로 가는 길은 쉽다. 이런 특성은 매직 더 게더링이나 도미니언처럼 구성 요소 만으로 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방식, 혹은 마이크 피츠제럴드의 미스테리 러미 시리즈처럼 기본 구조는 동일하지만 게임마다 규칙이 바뀌는 방식으로 게임 디자인에 활용해볼 수 있다. 다만 예외적인 규칙이 하나 생길 때마다 새로운 플레이어에게는 비용이 된다. 디자이너는 그 비용이 가져다 줄 이득의 가치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포커는 맞춰서 바꿀 수 있다

포커는 맞춰서 변형하기 굉장히 쉽다. 다양한 유형의 포커가 존재하며 다양한 스타일로 게임이 진행된다. 딜러스 초이스 포커는 이 점을 극단으로 활용해 딜러가 딜을 할 때 플레이할 게임을 선택한다. 플레이어가 게임 규칙이나 “올바르게” 플레이하는 방법을 살펴봐야 경우는 흔하지만, 플레이어들이 포커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플레이하는 경험을 주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디자이너는 게임을 디자인하면서 자기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하고, 그 중 일부를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면서 함께 플레이하는 집단의 취향에 맞춰 개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볼 수 있다.

포커에는 숨겨진 정보가 있다

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는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젖힐 수 있다. 이런 특성이 블러핑과 오도가 있는 게임 이론의 세계를 열어 젖히면서 게임 플레이는 메마른 규칙의 통계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포를 감지하는 행위로 변한다. 이것이 잘 되면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직관과 이성이 격렬하게 뒤섞일 수 있다. 숨겨진 정보가 모든 게임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디자인하면서 그 부분을 오래, 열심히 고려해보지 않은 경우는 없다.

운과 마찬가지로 숨겨진 정보는 그 게임을 플레이할 플레이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나는 숨겨진 (혹은 예상하기 어려운) 정보가 없는 게임을 배울 때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 중 게임 경험을 괴롭게 만들어줄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플레이어들에게 악의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최적의 플레이를 계산할 수 있다는 점을 보고도 주체할 수 없을 뿐이다. 심지어 주사위 운도 그런 계산을 억제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확률적으로 최고의 수를 궁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게임에 의미 있는 숨겨진 정보가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가 자신을 오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과도한 계산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도 상대를 오도하기 위해 변덕스러운 수를 낼 수 있게 된다.

포커는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다

포커는 한 플레이어를 지목해 괴롭히기 어렵다. 캐주얼 플레이어에게는 이런 특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리스크 같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지목할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하면, 언제든 선두나 누가 봐도 뚜렷하게 이득이 되는 수를 지목해 방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더 익숙한 플레이어들이 있으면 손쉽게 정치가 게임의 중심이 된다. 동맹이 형성되고 지목 당하는 플레이어는 게임 성적이 아니라 충성심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이 부분을 핵심으로 하는 뛰어난 게임(특히 디플로머시)이 많다. 하지만 정치가 너무 두드러지면 게임의 다른 모든 부분을 지배하게 된다.

포커는 판돈이 있다

일반적으로 포커는 돈을 걸고 한다. 대부분 플레이어는 돈을 걸고 하지 않으면 포커에 의미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런데 조금만 실험해보면 플레이 집단에 따라 이런 특성을 우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돈을 잃고 나면 다시 사서 참가할 수 없는 토너먼트가 있다. 이 경우 판돈은 게임에서 탈락하는 조건이 된다. 어도비의 내 친구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년 동안 결과를 기록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기록되는 “점수”에 가치를 둔다. 점수가 명예의 척도인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판돈은 게임에 흥미로운 영향을 미친다. 판돈의 존재로 플레이어는 단지 1등 이상을 노리며 플레이하게 된다. 모든 판을 이기기 위해 경쟁하게 되기에 자기가 꼴찌라고 해도 어떤 의미가 있다. 나는 이런 점을 활용해 내가 플레이하는 하트 리그에서 그룹이 마치 돈이 걸린 것처럼 플레이하고 결과를 계속 기록하게 함으로써 성질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런 변화가 좋은 플레이어들의 플레이를 바꾸는 방식은 굉장했다!

새롭게 디자인하는 게임에서 이런 특성을 활용하는 예로는 작은 게임 점수를 몇 시간 혹은 수 개월에 걸쳐 일어나는 더 큰 메타게임으로 연결하는 방법이 있다. 메타게임이 끝나갈 때면 플레이어들은 구체적인 한 번 한 번의 점수보다는 다른 플레이들과 비교한 자신의 등수를 신경 쓰면서 플레이 방법을 바꾸기 시작한다. 하트 같은 게임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플레이어 처음에는 자신의 점수를 신경 쓰지만 게임 후반에는 선두에 있는 사람이 멀리 뒤쳐진 사람을 상대로 점수를 따서 게임을 끝내려고 한다.

마지막 생각

몇 년 전 나는 아타리 창업자인 놀란 부쉬넬을 포함해 저명한 컴퓨터 게임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패널을 본 적이 있다. 현장에서 패널들은 어떤 게임에서 영감을 얻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컴퓨터 게임을 물어본 것이었지만 놀란은 “골프”라고 답했다. 내 기억이 과장될 만큼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청중 사이에 낄낄거리는 소리가 퍼졌던 것 같다. 골프나 포커 같은 진정한 고전 게임이 세기에 걸친 시간을 견디도록 잘 “디자인된” 게임이 되는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정말 소수다. 그런 점을 간과한다면 한 명의 디자이너가 풍부한 아이디어를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비극적이게도 25년도, 50년도 아닌, 수 천 년까지 거슬러 가는 우리의 유산과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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