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4일

밸런스 오브 파워, Ⅰ. 게임과 실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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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입니다. 게임 밸런스 오브 파워는 실제 세계의 지정학을 표현한 게임인데요. 1장에서는 실제 세계의 요소를 게임으로 표현하는 것과 실제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설명은 이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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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오브 파워>는 핵무기 시대의 지정학을 다룬 게임이다. 당신이 미국의 대통령이나 소련의 서기장 역할 중 하나를 선택하면, 컴퓨터는 반대쪽 지도자의 역할을 맡는다. 게임의 목표는 당신이 이끄는 국가의 위신[prestige]을 높이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위신이란 국가가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얼마나 호의와 존중을 받는가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각자의 군사력에 좌우된다. 당신은 최대한 많은 강대국을 우호국으로 만들고, 적대국은 적게 만들되 가능한 약소국이어야 한다.

게임은 다양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 전세계를 지정학적 무대로 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내란이 일어나 국가의 안정을 위협하고, 어떤 곳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정부에 도전하는 군사적 행동으로 전개되며, 또 다른 곳에서는 쿠데타가 정부 지도자를 내려 앉히고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선다. 초강대국이 약소국을 외교적으로 위협하면 약소국이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도 나타난다.

이 모든 사건을 국가의 위신을 올리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당신과 우호적이지 않은 정부가 반군 게릴라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면, 그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 당신이 모험을 좋아한다면 반군('자유의 투사들' 쯤?)을 돕고자 군사를 파병해 상황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반군이 정부를 전복하는 데 성공한다면, 새 정권은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다. 당신과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가 불안정해지기 쉬운 상태라면, CIA의 적절한 압력을 통해 그 정부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우호적인 지도자를 앉힐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외교적 위협을 가해 움츠러들게 함으로써 당신에 대해 핀란드화 하도록 할 수도 있다.

물론, 상대 지도자 역시 당신의 우호국을 상대로 똑같은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우호국을 보호하려면 대책을 취해야 한다. 먼저 우호적인 정부에 무기를 주거나 부대를 파견(특히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상대로 유용하다)해 도와줄 수 있다. 또 경제적 지원을 통해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면 발생 가능한 쿠데타를 방지할 수 있다. 아니면 그냥 어떻게든 위협해버려도 된다. 그렇게 하면 상대 지도자의 위협에 대한 우호국의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다. 물론, 그들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지 모르니 조약은 준수해야 한다.

당신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이런 정치적 사건에 자유롭게 관여할 수 있고,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의 묵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면, 그는 당신의 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는 게임의 가장 극적인 순간인 '위기'로 이어진다. 당신은 그 요구에 둘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응할 수 있다.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 발짝 물러서 당신의 행동을 철회하거나, 단호한 태도로 그 요구를 거절해 위기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공은 상대편으로 넘어간다. 그는 물러설지, 그 결정에 장단을 맞춰 위기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지 결정한다. 위기수준의 상승과 하강의 과정은 어느 한 쪽이 물러서거나 위기가 '데프콘 1'[Def Con 1]의 수준으로 상승할 때까지 이어진다. 어느 한 쪽이 물러선다면, 그 국가는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상당한 위신을 잃게 되고, 말만 크게 하고 꽁무니를 빼는 나라가 되어 버린다. 만약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고 데프콘 1에 달하면, 미사일이 발사되고 세계는 핵의 불바다 속에서 파멸하게 된다. 모두 지는 것이다.

때문에 <밸런스 오브 파워>는 판단의 게임이다. 초강대국의 지도자인 당신은 당신이 취하는 행동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주의 깊게 가늠해야 한다. 세계정세를 잘 살펴보면서 상대방이 물러서지 않을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기회주의적 행동이나 허세 속에서 그런 중대한 문제를 골라낼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플레이어의 노력을 돕고자, <밸런스 오브 파워>는 세계의 국가들에 대해 엄청난 정보를 제공한다. '스마트 맵' 시스템을 통해 세계 각 국가의 반란, 지역적 불만, 외교적 관계 등 많은 변수를 그래픽으로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잠비아에 얼마나 많은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는지 알고 싶다면, 표시되는 숫자를 보면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건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이다. 그 풍부한 디테일은 실제로 있을법한 매력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실제로 있을 법한 인상과 현실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게임이 지정학적 과정의 역동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본떴을까?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제5장에서 나올 것이다. 이 장에서는, <밸런스 오브 파워>의 사실성 문제에 대해 서론만 말하려고 한다. 이 도입부를 읽고 나면 뒤이은 내용을 더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1. 게임과 시뮬레이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혼동하는 것이 게임과 시뮬레이션의 차이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둘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지 내에서 정의되기 때문에, 내가 '게임'이라는 단어의 궁극적이며 진실하고 최종적인 정의를 내릴 권한은 없다. 하지만, 그 의미가 너무 넓으면 이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하게 바로잡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모호한 단어가 혼동을 부른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이유는 충분하다.

게임과 시뮬레이션은 그것이 현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하지만, 그 디자이너(설계자)의 의도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시뮬레이션은 그 분야에 가장 해박한 전문가가 인정할 정도의 사실성을 가진 시스템의 작동을 표현하려 하는 진지한 시도이다. 시뮬레이션은 주로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특정한 상황에서 시스템의 작용을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항공기 설계자들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들의 구상을 시험해 본다. 항공기를 만들고 추락하는 걸 본 다음에서야 고치러 가는 것보다는 컴퓨터에서 항공기의 작용을 시뮬레이트해보는 것이 더 싼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핵무기 설계자들도 설계를 다듬는 데 시뮬레이션에 크게 의존한다. 새로 만든 20메가톤 수소폭탄을 어떤 도시에 시험해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컴퓨터로 시험을 해 본다.

시뮬레이션의 또 다른 흔한 용도는 훈련이다. 군대는 1830년대 프로이센 이래로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오고 있다. 커다란 테이블에 군부대를 나타내는 표지들을 놓고, 지휘관들이 가상의 전투에서 그들의 군대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세부 규정들을 의논한다. 시뮬레이션 훈련의 가치는 1866년과 1870년, 프로이센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치고 프랑스군을 치기 전까지는 다른 군의 조롱거리였다. 다른 국가들은 그 뒤에야 재빨리 군사 시뮬레이션을 적용했다. 그런데 번역 상의 문제가 혼동을 가져왔다. 독일어로 이 시뮬레이션을 'Kriegspiel'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전쟁활동'(war-play)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영어로 올 때 '워게임'(wargame)이라고 번역되었다. 하지만, 독일어 단어에는 영어가 가진 경박한 의미가 없다. 분명히 독일어는 방대한 규칙과 단호함, 그 정확성을 담은 시뮬레이션을 표현하는 말이고, 그 엄격함으로 독일 참모들은 Kriegspiel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것이 즐거운 활동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뮬레이션은 업무 훈련에도 사용된다. 야심 있는 경영자라면 시뮬레이션 속에서 값싼 실수를 해볼 수 있다. 색다른 마케팅 전략을 세워 연구와 개발, 제조에 투자하는 자금의 양을 바꾸어도 보고, 어떻게 해야 시뮬레이트된 회사가 경쟁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 시뮬레이션은 어떤 사업에 대해서도 복잡한 상관성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또 조직 내의 생각을 나누기 위한 공통의 원리도 제공한다. 만약 회사의 모든 경영진이 같은 시뮬레이션을 경험해본다면, 서로 생각을 나누기 더 쉬울 것이다.

이 모든 사례를 볼 때 분명한 사실은 시뮬레이션의 이용 가치란 세부적인 사실성에 있다는 것이다. 항공기의 시뮬레이션은 반드시 새 항공기의 이륙을 정밀하게 예측해야 한다. 잘못된다면 항공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핵무기 시뮬레이션이 수소폭탄의 중성자 공급을 잘못 계산한다면 전투에서 폭발하지 않을 것이고, 설계자에게는 낭패가 될 것이다. 만약 사업 시뮬레이션이 경영자에게 광고예산을 잘못 판단하게 한다면, 그 회사는 업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 시뮬레이션은 많은 세부사항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세부사항은 수량적인 개념으로 이루어진다.

게임의 의도는 그것과 전혀 다르다. 게임과 시뮬레이션의 관계는 그림과 설계도의 관계와 같다. 집을 그린 그림은 집에 대한 감정적인 인상을 주지만, 집의 설계도는 목수가 창턱을 정확히 어디에 달아야 하는지 말해준다. 게임은 시뮬레이션과 유사하면서 질이 낮춰진 것이 아니다. 게임은 더 넓고, 덜 수량적인 개념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그림이 집을 짓기 위한 기초로 사용될 수도 없고, 설계도로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대한 감정을 전할 수도 없다. 그 차이는 부드러운 개념[soft concept]과 단단한 개념[hard concept]의 차이에 있다. 측정할 수 없는 것과 측정할 수 있는 것의 차이다. 시뮬레이션과 게임은 전혀 다른 메시지로 소통하려 한다. 시뮬레이션은 기술적 정보로 소통하고, 게임은 예술적 메시지에 가까운 어떤 것으로 소통한다.

복잡성

실제 사례로 오면 시뮬레이션과 게임을 "정보 대 예술"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여러 이유로 불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저가의 오락용 비행 시뮬레이터는 일반적인 소형컴퓨터에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에 의해 연산된다는 점은 수백만 달러의 전문 시뮬레이터로 모형화된 것들과 다르지 않다. 일반 소비자용 비행 시뮬레이터조차도 양력, 고도, 대기속도 같은 것을 연산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전문가용 비행 시뮬레이터와 뭐가 다를까?

그 답은 앞서 말했던 "세부적인 그럴 듯함[verisimilitude]"에 있다. 시뮬레이트된 항공기가 30도의 뱅크각에 180노트의 대기속도에서 8,000피트 상공으로 올라가도, 소형컴퓨터용 비행 시뮬레이터는 그 결과인 양력을 아주 정확하게 계산할 의무가 없다. 근사치를 만들어내거나 몇 가지를 생략해도 화를 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대로, 전문 비행 시뮬레이터는 양력을 보다 정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그게 유일한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만약 조종사가 시뮬레이터의 결점 때문에 부정확한 반응을 보이는 시뮬레이터로 훈련하게 된다면, 실제 비행에서도 실수를 반복해 사람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이것이 오락용 비행 시뮬레이터가 작은 힘을 가진 소형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반면, 전문 비행 시뮬레이터는 대량의 램을 가진 강력한 컴퓨터를 요구하는 이유이다. 작고 세세한 사항들을 모두 정확하게 연산하려면 엄청난 연산력을 필요로 한다. 소형컴퓨터에서 실행되는 시뮬레이션은 몇 가지를 생략해야 한다.

가정용 비행 시뮬레이터 역시 다른 면에서 만족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가정용 비행 시뮬레이터는 실질적인 정확성보다는 그 환영을 만들어내야 한다. 시각적이고 정신적인 암시들을 조절해 사용자의 불신을 없애줄 정밀도라는 이름의 환상을 만들어 내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사용자는 어느 정도의 감정적인 수준에서는 자기가 컴퓨터 키보드 앞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 항공기를 운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요구 사항은 일정 수준의 정확도 역시 이루어야 함을 내포한다. 플레이어가 비행기를 급강하시키면 가속해야 한다. 하지만, 가속율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사용자에게 있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가 빨라지면서 조종석에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리고 속도계가 올라가며 엔진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디자이너에게 그런 것은 부차적이고 가속의 정확성에 더욱 집중한다. 하지만 게임 디자이너는 환영을 만드는 데 피땀을 흘린다.

게임과 시뮬레이션의 또 다른 차이점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명료한 대립을 기대한다는 것에 있다. 실제 세계에서 대립은 다양한 사회적 제어에 의해 완화된다. 대립은 인간의 활동에서 피할 수 없지만, 도덕관과 심리적 억압의 복잡한 조합이 대립을 약화시키며 그것은 생산적인 결과로 전환된다. 사업가는 "경쟁자들의 뒤통수를 때릴 정도로 많이 팔아보자"라고 외친다. 이런 도덕관이 우리의 문명을 가능하게 한 것이지만, 손톱과 이빨로 대립을 해결하는 데 적응된 심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되는 간단하고 직접적인 대립을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게임이든 상업적 성공을 거두길 희망한다면 대립을 강조하고, 피를 보고 싶은 욕망을 좌절시키는 억압은 제거하라. 모든 게임이 피가 튀는 슈팅 게임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대립의 성질을 뚜렷하게 강조하고, 실제세계의 대립에는 드문 감정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해결법을 제공해야 한다.

게임과 시뮬레이션의 차이를 만드는 세 번째 요인은 게임의 접근성이다. 시뮬레이션은 그 사용자가 긴 문서를 읽거나 장황한 준비과정을 취하게 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반면, 게임은 즉시 그 사용자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별 득도 없는 길고 지루한 설명서를 가진 게임에 관대하지 않다. <밸런스 오브 파워>는 게임시장에서 가장 지나치게 요구 사항이 많은 게임 중 하나로, 두터운 설명서가 게임의 필수 구성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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